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양 데이원자산운용 프로농구단/역사 (문단 편집) === 2007-08 시즌 ~ 2010-11 시즌 === 동양 창단 코치이자 첫 내부승격 사령탑이었던 명장 [[김진(농구인)|김진]] 감독은 11년간 정든 팀을 떠나 [[서울 SK 나이츠]]로 이적했다. 동양-오리온스에서 통산 197승을 달성했으나 자신이 지명한 [[김영환(농구)|김영환]]의 충격적인 트레이드 이적으로 인해 [[이동준(1980)|이동준]]이 온 바뀐 구단의 분위기로 인해 결국 고인물은 썩힘을 강조하면서 1년 남은 계약기간 대신 도전을 선택하게 된다. 2007 KBL 드래프트에서 1 라운스 8 순위의 오리온스는 1 라운드 2순위의 전자랜드와 KBL 픽 트레이드를 했다. 이 과정에서 김진 감독은 구단에 섭섭함을 드러내며 평소 이적을 꿈꾸었으나 현실이 되고 말았다. 추가로,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병철의 노쇠화와 김승현의 부상누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. 후임으로 6년전 영입할려 했던 [[창원 LG 세이커스]] 초대 감독이었던 [[이충희]] 전 고려대-동국대 감독을 영입했다.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[[김상식(농구)|김상식]] 수석코치를 내정했다. 하지만, 자율 속 체계의 김진 감독 농구에 적응된 오리온스 선수들이 카리스마의 이충희 감독 농구에 적응할지는 의문부호를 갖게 했다. 2007-08 시즌 팀은 개막 2연승을 타게 된다. 그러나, 그게 끝이었다. 2연승 이후 확 죽어 버리며 부진에 빠졌고, [[이충희]] 감독도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사퇴하는 등 어수선한 시즌을 보내다가 '''꼴찌'''가 되었다.(하필 그 때 [[김승현(농구)|김승현]]이 흔들렸다...) 사실 전조는 4강에 나갔던 2006-07 시즌부터 보였는데, 김승현은 이 시즌부터 혹사의 여파가 나타나면서 [[유리몸]]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고, 나머지 선수들은 역대 프로농구에서도 가장 압도적 기량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[[피트 마이클]]에게 공을 몰아주기 바빴다. 오죽하면 '''피트 오리온스''', '''대구 마이클스'''같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. ~~고양에서도 그랬다면 '''고양 마이클스'''~~ 결국 김승현과 마이클의 컨디션 저하와 김진 감독의 SK 이적설로 인해 4강 PO에서 모비스에게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져 버렸고, 그 결과 자유계약용병제가 폐지된 2007-08 시즌부터 김승현의 허리부상, 다른 선수들의 기량 저하 같은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12승 42패를 기록하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. 그 후 [[이충희]]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된 수석코치이자 대행이었던 [[김상식(농구)|김상식]] 감독 역시 2008-09 시즌 중후반부터 이어진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시즌 도중 사퇴하는 등 2008-09 시즌도 결국 이렇다 할 반등을 못하다가 9위에 머물러, 다시 이 팀의 하락 행보가 시작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. 게다가 그 와중에 김승현과 연봉 협상을 하다가 일이 틀어지자,[* 샐러리 캡 제도를 피해서 연봉 이외에 엄청난 액수의 뒷돈을 지급하는 이면 계약을 체결했는데 나중에 돈을 줄 수 없다고 발뺌했다. 결국 이 사실을 폭로하자 협회는 김승현만 징계하면서 팀을 감싸 돌았고, 2011년에 구단과의 재판에서 승소했다.]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성적은 점점 더 하위권으로 처지게 되었다. 결국 2009-10 시즌과 2010-11 시즌도 2연속 꼴찌로 마무리. 2007-08 시즌부터 4시즌 간 양궁순위(?)인 10-9-10-10(십구십십) 순위를 기록하며 이 때부터 '''꼴리온스'''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